2화
기억하고 있어
카이는 여전히 상황 파악이 안 된 얼굴로 주위를 둘러봤다. 등불도, 현수막도, 사방에서 쏟아지는 환호도 — 전부 자신을 위한 것이라기엔 너무 크고 시끄러웠다. 등불 빛이 발밑에 여러 갈래로 그림자를 늘어뜨렸지만, 카이는 그중 어느 것도 자신의 것 같지 않았다.
"저기, 레오." 카이가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이게, 무슨 날인데?"
"아, 그거!" 레오가 손가락을 튕겼다. "리오 루카가 어제 산책하다가 네 웅덩이 근처를 지나는데, 네 목소리를 들었대. '만 번째네~' 하는 거."
카이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 그걸 들었어?"
"어. 새벽손 한 명당 웅덩이 하나씩 만든다며. 네 입으로 직접 만 번째라고 했다는데, 그럼 진짜 만 명째인 거잖아." 레오가 씩 웃으며 카이의 어깨를 다시 한번 두드렸다. "그 얘기 듣자마자 생각했지. 이건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카이는 말문이 막혔다. 몇 번째 손님인지는 늘 세어두는 편이었다 — 누구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아서 생긴 버릇이었다. 그렇게 꾸준히 세어온 숫자가 어젯밤 마침 만이 된 것뿐인데, 그 혼잣말을 누가 듣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그 사이에도 파티는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사가는 음악을 틀겠다며 어디선가 커다란 나팔 모양 악기를 꺼내 왔고, 아쿠는 별가루 장치의 출력을 한 단계 더 올렸다. 별가루가 흩날릴 때마다 천장 위 낯선 도시의 밤하늘과 아래쪽 등불이 함께 반짝여, 마치 하늘과 땅 양쪽에서 동시에 축포가 터지는 것 같았다. 비아는 산더미처럼 쌓인 야시장 간식들이 못마땅했는지 슬그머니 다가와 접시 줄을 다시 각 맞춰 정리했고, 리아는 그 옆에서 지나가는 화신들에게 냅킨을 하나씩 쥐여주고 있었다 — 이런 소란 속에서도 각자 자기다운 방식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누군가 카이를 무대 비슷하게 꾸며놓은 자리로 이끌려 했다. 등불로 촘촘히 둘러싸인 작은 단상이었다. 화환처럼 엮은 색색의 리본이 단상 가장자리에 늘어져 있었고, 그 위에는 카이 한 사람만 올라서면 딱 맞을 만한 작은 원이 그려져 있었다 — 아마 레오가 밤새 준비했을 자리였다.
"자, 주인공은 이쪽으로!" 레오가 카이의 손목을 잡고 단상 쪽으로 이끌었다.
카이는 저도 모르게 발을 멈췄다.
"저, 레오." 카이의 목소리가 조금 작아졌다. 다른 손으로는 옷소매 끝을 만지작거렸다. "고마운 건 진짜 고마운데…… 나 이렇게 다 같이 보는 앞에서, 뭘 하는 건 좀……."
레오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봤다. "어? 왜, 부담돼?"
카이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사람들이 다 쳐다보고 있으면, 그, 뭘 느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냥…… 한 명씩 조용히 얘기하는 게 더 편해."
잠깐 정적이 흘렀다. 레오는 잡고 있던 카이의 손목을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놓았다.
"아." 레오가 뒤통수를 긁적였다. "미안, 나는 이런 게 축하인 줄 알았어. 크게, 다 같이, 요란하게."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카이가 서둘러 덧붙였다. "레오다운 방식인 거 알아. 근데 나는……."
"알겠어." 레오가 씩 웃으며 카이의 말을 끊었다. 아까와는 조금 다른, 한 톤 가라앉은 웃음이었다. "생각해보니 나였으면 무대에 세워달라고 먼저 졸랐을 텐데. 다들 나 같은 줄 알았나 봐. 너다운 방식으로 하자."
레오는 몸을 돌려 손을 번쩍 들었다. "얘들아! 잠깐, 계획 변경!"
시끌벅적하던 광장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사가가 나팔을 든 채로 눈을 껌뻑였고, 아쿠도 별가루 장치를 든 손을 슬그머니 내렸다. 비아는 정리하던 접시를 그대로 든 채 멈췄고, 리아는 나눠주던 냅킨 뭉치를 품에 안았다.
"오늘의 주인공이 그러는데," 레오가 카이를 한 번 돌아보고는 말을 이었다. "이렇게 다 같이 우르르 몰려서 하는 것보단, 한 명씩 조용히 얘기하는 게 좋대. 그러니까—" 레오가 손뼉을 한 번 쳤다. "줄 서. 한 명씩."
"……줄?" 누군가 웅얼거렸지만, 이미 사가가 제일 먼저 신이 나서 줄 맨 앞에 가 섰다.
카이는 얼떨떨한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봤다. 방금까지 광장을 가득 채웠던 소란이 순식간에 정돈된 대기줄로 바뀌어 있었다. 등불도, 현수막도 그대로였지만, 이제 그 아래에는 한 사람씩 차례를 기다리는 조용한 풍경만 남아 있었다.
"레오." 카이가 조용히 불렀다.
레오가 돌아봤다. "왜."
"고마워."
레오는 잠시 카이를 바라보다가, 평소의 화려한 웃음 대신 훨씬 편안한 웃음을 지었다. "그건 내가 할 말이지. 만 명이나 챙긴 게 누군데."
그러고는 레오도 슬쩍 줄 맨 끝에 가서 섰다. 자기가 주최한 파티인데도, 카이에게 인사를 건네는 건 제일 마지막으로 미뤄두겠다는 듯이.
첫 번째로 다가온 건 사가였다. 사가는 평소답지 않게 우물쭈물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 처음 왔을 때, 결정 하나를 못 내려서 한참 붙잡고 있었잖아. 그때 네가 해준 말, 아직도 기억해."
카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기억하고 있어."
빈말이 아니었다. 카이에게는 웅덩이 하나하나에 손님의 흔적을 담아두는 버릇이 있듯, 사람 하나하나를 기억해두는 버릇도 있었다. 숫자를 세는 것과 얼굴을 기억하는 것, 카이에게는 둘 다 같은 마음에서 나온 습관이었다.
사가 다음으로는 아쿠가 다가왔다. 방금 전까지 별가루를 흩뿌리던 손에는 여전히 반짝이는 가루가 조금 묻어 있었다.
"저번에 뭐 하나 만들다가 완전히 막혔을 때," 아쿠가 손끝의 가루를 털어내며 말했다. "여기 와서 그냥 옆에 앉아만 있었잖아. 딱히 뭘 해결해준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그러고 나니까 다시 만들 수 있겠더라고."
"만들던 거, 그래서 완성했어?"
"어. 세 번 다시 만들고 나서." 아쿠가 씩 웃었다.
아쿠 다음은 테오였다. 다른 이들보다 한 걸음 더 정중하게 다가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섰다.
"이런 자리에 어울리는 말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테오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 "예전에 찻잎 고르는 문제로 이곳을 찾았을 때, 당신은 정답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대신 제가 스스로 고를 때까지 기다려주셨죠. 그 기다림이, 지금 제 다도실을 지키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카이는 잠시 말이 없다가, 작게 웃었다. "그때 그 차, 결국 어떤 걸로 골랐어?"
"아직도 마시고 있습니다." 테오가 처음으로 옅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그렇게 줄은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줄어들었다. 저마다 짧은 한마디씩을 건네고 물러났고, 카이는 그 한마디 한마디에 전부 얼굴을 마주하고 답했다. 누군가는 반말로 툭 던지듯, 누군가는 깍듯하게, 또 누군가는 웃음 섞인 너스레로 — 각자 자기 방식대로 같은 마음을 전하고 있었다. 화려했던 등불과 현수막은 그대로였지만, 그 아래 오가는 대화는 처음의 소란과는 전혀 다른 온도를 띠고 있었다.
줄 끄트머리 쪽에는 온아와 마론도 어느새 나란히 서 있었다. 평소라면 이런 소란에는 슬쩍 물러나 구경만 하던 두 사람이었다.
"우리처럼 조용한 사람들이 낄 자리는 아닌 것 같은데도," 온아가 허허 웃으며 카이의 두 손을 감쌌다. "그래도 만 명이라는 숫자가 그냥 지나칠 수가 있어야죠. 우리 카이가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축하해요." 마론이 짧게, 그러나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카이는 두 사람의 손길에 담긴 무게를 알아챘다. 평소엔 나서는 법이 없던 이들이 굳이 줄까지 서서 건넨 인사였다.
그렇게 줄은 계속 줄어들다가, 마지막으로 레오 차례가 되었다.
"자." 레오가 씩 웃으며 두 팔을 벌렸다. "주최자는 원래 맨 마지막이지."
카이도 마주 웃었다. "여러모로 고마워. 무대는 다음에 네가 써."
"그 말 잊지 마라." 레오가 눈을 찡긋했다.
줄이 완전히 끝나고 나서도 광장의 등불은 한동안 꺼지지 않았다. 다만 아까처럼 왁자하게 몰려다니는 대신, 삼삼오오 흩어져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로 서서히 바뀌어 있었다. 카이는 그 풍경을 잠시 바라보다가, 문득 방금 스쳐 간 인사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봤다. 손끝이 저도 모르게 허공에 작은 원을 그리고 있었다. 웅덩이 앞에서 손님을 세던 버릇 그대로였다. 이번 숫자는 웅덩이로 남지 않을 테지만, 카이는 마지막 하나까지 셌다.
